반군주제 학생에서 와이너리가 설립되기까지~
1848년 체코슬로바키아에 프라하에서 젊은 프랜시스 코벨은 군주제에 반대하는 데모하는 학생에 가담하고 17년형을 받았습니다. 2년간 구금 후 어머니의 도움으로 탈옥했습니다. 탈옥 후에 네델란드에서 먼저 시가(sigar) 제조법을 배워 돈을 벌어 뉴욕으로 왔습니다. 뉴욕에서 시가 상자를 만들면서 두 동생이 합류하면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1849년 캘리포니아에 골드 러쉬 시대가 시작 되면서 캘리포니아로 옮겨와 코벨 시가 상자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켈리포니아에 상징적인 나무인 레드우드(Red Wood)를 벌목하여 시가 상자를 만들어 사업을 했습니다. 사업이 급속히 성장하는 시기에 기차가 들어오면서 샌프란시스코와 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때 기차길과 기차역을 건설하였다고 합니다. 아직도 그 당시 코벨 기차역이 그곳에 남아 이 와이너리의 명소가 되어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시가 상자 공장에 화재가 나서 사업을 접고, 포도등 여러 과일을 생산하며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던 코벨 형제는 소노마 카운티에 있는 러시아리버에서 포도주 생산을 시도했습니다. 포도가 이 토양에서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와이너리를 짓게 되었습니다. 특히 여기에 있는 성은 체코 감옥에 투옥되어 고난을 극복했던 시절을 잊지 않도록 감옥과 비슷한 모양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미국 샴페인의 아이콘이 되다.
샌스란시스코 지진과 미국의 금주법이라는 어려운 시대를 힘겹게 견뎌내고.. adolf heck 의 와이너리 소유주 3세에게 매각되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Adolf heck은 더 가볍고 드라이한 스타일의 샴페인을 제조하면서 샴페인의 새로운 정의를 내렸습니다. 숙성 과정에서 손으로 정확하게 흔들어야 하는 어려운 리들리(riddling) 과정을 자동화하는등의 혁신으로 신대륙에서 특이하게 샴페인으로 좋은 평을 받으며 꾸준히 판매량이 늘어났습니다.
특히, 1982년부터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새해 맞이 축제 샴페인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샴페인 수요가 늘어났고, 미국 대통령 취임식 10회에서 제공되었습니다 . 또한 2009년 1월 20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의 의회 취임 만찬에서도 제공되면서 미국인들이 새해 첫날을 축하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미국 샴페인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우아하신 연세가 지긋하신 여성분께서 이 와이너리는 처음부터 와인을 만들지는 안핬고, 처음에는 브랜디를 양조해서 오랜 양조 노하우가 쌓여 있다고 하여 브랜디를 한병, 로제 와인 한병, 샴페인 한병을 샀습니다. 그러다 보니 ^^.. 한박스… 구매 해서 왔지요. ^^

이 와이너리에는 체코 프라하의 봄, 미국의 금주법 시대, 골드 러시 시대의 역사와 고난의 역사가 곳곳에 뭍어 있어 더욱 애정이 가고, 지금은 소노마 밸리의 대표 와이너리가 되어 있습니다. 저도 체코 감옥 모양과 비슷한 성을 보면서 다시 제 인생을 돌아보는 즐거운 와이너리 투어가 되었습니다.



